단상서재

2026년 7월 28일

서장. 동아리방의 일기장

대학 시절, 동아리방 책상 위에는 늘 낡은 노트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겉표지에는 누군가 큼직하게 쓴 "MY WAY"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누구든 지나가다 펼쳐 들고 적고 싶은 말을 적었다. 그날 겪은 소소한 일상, 시험에 대한 덧없는 푸념, 혹은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낙서까지. 누군가는 글을 얹었고, 누군가는 그저 묵묵히 읽고 나갔다. 그 노트를 관리하는 주인 따위는 없었다. 그저 들어온 이가 책상 위에 놓인 장을 펼쳐 읽고, 자신만의 온기를 보태고 갔을 뿐이다. 비록 앞서 적고 간 사람과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다 해도, 그 노트의 페이지 안에서는 타인과 타인의 삶이 덤덤하게 이어졌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은밀하고 요긴한 역할이 있었다. 지금 내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남기는 일종의 좌표 메모판이었다. ‘어느 술집에 있을 테니 오라’거나, ‘몇 시까지 어디로 간다’는 식의 문장들. 휴대전화라는 물건이 세상에 없던 시절이었다. 사람을 찾으려면 일단 동아리방의 문을 열고 그 노트를 펼쳐보아야 했다. 메모에 적힌 주소를 따라가면 그곳에 사람이 있었고, 혹여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발길을 돌려 돌아왔다.

결국 그 낡은 노트는 두 가지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던 셈이다. 하나는 가슴속에 남기고 싶은 다정한 마음을 남기는 일, 또 하나는 그 자리에 없는 이들에게 나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일.

사십 년이라는 세월이 아득하게 흘러, 내가 세상에 내놓은 디지털 앱이 정확히 그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40년 전 그 노트를 떠올리며 앱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선술집 벽면을 빼곡하게 덮고 있던 낡은 낙서들을 바라보다 문득 시작된 일이었고, 한참 앱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야 깨달았다. 사십 년 전 동아리방 책상 위에 누워 있던 노트가, 어느새 픽셀과 코드의 형태로 스마트폰 화면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그 노트가 왜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잊히지 않고 가슴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글은 그 여섯 달 동안의 진솔한 기록이다. 평생 코드를 써본 적 없는 삼십 년 차 건축사가 AI라는 낯선 항해사와 손을 잡고 앱을 빚어내고, 그것을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로 쏘아 올리기까지 겪은 여정이다.

화면 위로 집을 짓고 앱을 '만드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진짜 이야기는 그것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터를 잡는' 그 묵직하고 고단한 시간 속에 담겨 있다.